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18 민주화운동/의문점 (문단 편집) ===== 시신 모처 수송 후 해양 투기 의혹 ===== 허장환이 증언한 내용에 따르면 제때 처리하거나 소각하지 못한 시신이 많아 부패가 심각했고 결국 시취가 흐르지 않게 비닐로 싼 후에 수송기나 수송헬기들을 동원하기까지에 이르러 '''결국 모두 다 해양에 투기하여 처리했다고 한다.''' 5.18 사망자 시신들을 바다에 수장했다는 소문은 항쟁 당시부터 돌았다. >21일 아침 우리는 도청을 제외한 광주 일원을 장악했다. 상원 형을 찾아온 동생 윤태원과 함께 YMCA 앞까지 갔다. 군인들이 도청 앞을 바리케이드로 막고 있었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중앙국민학교 후문에 세워진 도로 공사 덤프트럭에 올라가 키 박스를 열어 차를 운전했다. 조수석에 윤태원이 앉았다. 트럭을 몰고 백운동, 지원동, 산수동, 중흥동 등 가는 곳마다 시민들의 환영은 대단했다. 음료수, 주먹밥, 심지어는 누룽지까지 차 위로 올려다주었다. 차를 운전하고 다니다 서점 앞에서 상원 형을 만났다. 형은 "도청 옥상에서 헬기가 2분 간격으로 떴다 앉았다 하는데 아마도 '''어제 죽은 사람들을 서해 바다로 빠뜨리는 모양'''이니 사람들을 오후 1시에 도청으로 모이도록 하자"고 했다. >---- >김상집(당시 24, 전남방직 잡역부) 증언[*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풀빛 1990., p890] 2019년 김상집은 『녹두서점의 오월』에서 당시 시신 수장 소문에 대해 1990년 위 증언보다 더 구체적인 증언을 다시 남겼다. >당시 외신에 따르면 [[더러운 전쟁|아르헨티나에서는 1976년부터 민주 인사들의 실종이 5만여 명에 다다랐는데 고문하다 죽으면 시신에 돌을 매달아 대서양에 빠뜨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윤상원은 어제 그제 민주화를 외치다 공수들의 총칼에 죽은 시민들을 전두환 군부가 아르헨티나처럼 서해에 빠뜨렸다는 소문이 무성하다고 했다.''' 의로운 무명 용사들을 아르헨티나처럼 실종자로 만들 수는 없었다. 우리의 계획은 모든 차량에 시민이 탑승하여 그대로 도청 안으로 밀고 들어가 공수들을 무장해제하고 무명 용사들의 시신을 인수하여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 > 김상집(당시 24, 전남방직 잡역부) 증언[* 김상윤 외 『녹두서점의 오월』, 한겨레출판 2019., p171~17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